마이클 폴라니의 "과학 공화국"
정리: 김지연 (redgrass@korea.ac.kr)
마이클 폴라니의 "과학 공화국(the Republic of Science)" 은 과학정책에서 자주 등장하는 용어이다. 폴라니는 화학자로써 1933년 맨체스터대학 교수가 되었고 노벨상 후보로 언급될 정도로 뛰어난 과학자였지만, 1940년대 후반 과학철학으로 전향했다. 2차 세계대전과 핵폭탄의 개발이 영향을 준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경제학자이면서 인류학자로 유명한 칼 폴라니(Karl Polanyi))의 동생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과학공화국 용어는 폴라니가 학술지 '미네르바(Minerva)'에 1962년 제출한 논문, "과학 공화국: 그 정치이론과 경제이론(The Republic of Science: Its Political And Economic Theory)"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는 논문제목에서 이미 과학자 공동체가 정치기구의 특질과 닮았으며 경제원리에 따라 조직되어있음을 함축하고자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자 공동체를 움직이는 원리는 개별 과학자들의 독립적 발의 사이의 상호적 조정에 의한 협업(coordination by mutual adjustment of independent initiatives)이다. 과학자들은 같은 시스템 내에 있는 다른 과학자의 발의를 고려하면서 자신의 연구를 조정한다. 과학자들은 다른 과학자들이 달성한 결과에 연속하여 자신이 조정한 독립적 발의를 실행함으로써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 그는 그런 "독립적 발의의 자동적 조정원리(principle of spontaneous coordination of independent initiatives)"를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비유했다. 시장은 가격 시스템을 통하여 공급과 수요라는 교환관계를 조정한다면, 과학에서 개별 과학자는 다른 과학자의 출판 결과에 의해 형성된 지적 상황에 반응하면서 현재의 전문가적 표준에 근거하여 동기부여된다.
흥미롭게도 과학적 표준의 권위는 자신의 권위에 반대하는 다른 독립적 표준을 허용할 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자신에 대한 반대를 촉발시키고 때로 동화시키면서 그자신을 갱신하는 역량이야말로 과학적 정통성의 원천을 고유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폴라니는 여기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누가 이런 정통성의 권위를 실행하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그는 개별 과학자만으로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개인 과학자는 전체 과학영역의 아주 작은 파열만을 이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다음 질문은 이렇다. 개별 과학자의 견해의 집합을 어떻게 합동의 견해로 만들 수 있나? 과학자들은 어떻게 사물의 본성에 대한 과학적 관점을 추구하면서, 더구나 정통성에 도전하면서 개선하려는 독창성을 고무시키면서, 제기된 과학적 기여에 대한 가치평가를 합동적으로 수행할 수 있나?
폴라니는 개별 과학자는 같은 역량을 가진 중첩 집단의 구성원이고 과학 전체는 중첩되는 이웃 역량 집단과 연결된다고 설명한다. 그런 연결망 안에서 개별 연결선은 같은 중첩 분야에서 활동하는 과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치평가에 대한 동의가 수립될 때 발생한다. 그 결과, 중첩된 이웃 집단을 통하여 과학적 가치에 대한 통일적 표준이 과학 전체에 걸쳐서 우세해질 것이다. 이것은 과학적 견해가 어떤 단일한 개별 인간에 의해 수립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과학적 견해는 수천의 파편으로 분리되어 있는,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견해를 서로 보증하는 개별 과학자, 중첩된 이웃 집단의 연속을 통하여 다른 모든 사람과 연결된 합의적 사슬에 의존하여 수립된다.
게다가 심지어 과학적 권위는 과학자 조직을 통하여 배포되지도 않는다. 과학자 전문직업 구성원은 동등하다. 그들 사이의 과학적 견해는 명령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수립될 수 있을 뿐이다. 과학자 조직은 일반 대중에 대하여 과학의 권위를 세우며, 젊은이가 과학적 직업의 구성원이 되도록 훈련하는 과정을 통제한다. 그러나 신참자가 독립적 과학자 등급에 도달하면 더 이상 그의 상급자는 없다. 과학적 견해에 대한 복종은 상호 평가의 사슬 속에서만 작동한다. 동시에 그 과학자는 자신이 복종하기로 한 권위에 관하여 동등한 책임의 몫을 감당해야 한다.
이로써 과학공화국은 독립적 발의의 연합이다. 과학공화국의 귄위는 정통성에 의해 동기부여되고 규율되지만 그 권위는 역동적이다. 그 권위는 추종자들의 독창성을 통하여 지속적인 자기-갱신을 통하여 유지된다. 과학공화국은 탐험가 사회이다. 그 사회는 달성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 미래를 향해 분투한다. 탐험가로서 과학자는 자신의 지적 만족을 추구하고자 숨은 실재성을 향해 분투한다. 그 사회는 독립적인 과학적 발의를 지원하고 상호조정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스스로 만족스러워질 때, 다른 모든 사람을 계몽하고 사회가 지적인 자기-개선을 향하도록 돕는다.
이상 폴라니의 주장에서, 과학적 견해는 개별 과학자의 역량만으로 달성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정책에서 엘리트 과학자 육성에 집중하는 정책 접근은 다소 조정될 필요가 있다. 개별 과학자의 연구 발의의 독창성과 동기부여를 위해서라도, 동등하고 자유로운 합의적 조정 문화를 내장하는 과학자 공동체(과학공화국)의 형성이 핵심적인 사안일 것이다.
10년 후, 앨빈 와인버그는 폴라니의 과학공화국을 오마쥬하면서, "초-과학 공화국(Republic of Trans-Science)" 개념을 제기했다. 와인버그는 점점 증대하는 과학의 불확실성을 강조하면서 대다수 중요한 과학문제가 공공정책과 혼합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니까 초-과학공화국은 과학공화국의 특성과 정치공화국의 특성을 혼합한 모델이다. 폴라니 역시 과학은 공공 복지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에 대한 책임이 요구된다는 점을 언급한 바 있다. 과학의 영향이 점점 더 커지면서, 과학공화국은 과학자들의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연구 발의를 보증하면서도, 과학공화국 외부 사회에 대한 책임을 요구받게 되었다. 과학공화국 개념은 초-과학공화국 개념을 거쳐서 이후 규제과학(Regulatory Science) 영역을 새로 여는데 기여했다.
학술지 미네르바는 과학정책을 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것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1968년 "과학발전의 기준: 공공정책과 국가 목표(Criteria For Scientific Development: Public Policy and National Goals)"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고, 첫번째 글로 폴라니의 논문을 실었다. 그 때 편집자는 말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결코 밤의 그늘을 기다리지 않는다. 반대로 새로운 세기로 가는, 새로운 학술의 시대로 가는, 빛의 운반자이다". 새천년을 기다리던 2000년 미네르바 38호지는 그 첫번째 논문으로 폴라니의 1962년 논문을 다시 실었다.
[참고문헌]
- Polanyi, M. 1962, The Republic of Science: Its Political And Economic Theory, Minerva, I(1), 54–73.
- Weinberg, A. 1972. Science and Trans-Science, Minerva. 10: 209–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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