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증문화가 먼저 말하다>
해러웨이, 라투르 등 STS학자들은 ‘물질-기호학적 접근(material-semiotic approach)’을 자주 언급하는데, 여기서 ‘기호학적’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물질적이지 않은 것일텐데..... 뜬구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성취할 수 있을까요? 최근 저의 경험을 말하면, 대중 문화 속에서 유통되는 상징을 이해하면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라투르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에서 카프카의 <변신(metamorphosis, 1915)>을 언급했었죠. 라투프의 책을 볼 때는 그 대목에 별 감응이 없었는데.............. 나중에 <변신>을 읽고나서 다시 읽었을 때 매우 다른 느낌을 받게 되었습니다. 벌레가 되기 전의 그레고르는 근대의 '시민적 삶'을 상징합니다. "제 부모 귀에 들리는 그레고르의 그것처럼 내 말투는 뱃속의 소름끼치는 꾸르륵 소리와 비슷하게 들릴 위험이 있는데, 이것이 동물-되기의 전적인 난점이다(19쪽)" 이건 벌레(변신)가 된 후, 사람들(근대 시민)과 말이 안 통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라투르는 직접 말하지 않았지만, <변신>에 의하면... 가족조차도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죽기를 바라는데....... 변신한 사람들의 운명이 매우 절망적일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라투르의 친구, 슐츠의 <나는 지구는 아프다>의 서사도..... 카프카의 <변신>과 닮았습니다.. 도입 부분에서 주인공이 침대에서 무력하게 누워있는 모습이 변신의 첫 장면과 닮았고.... 주인공(나)이 땅멀미를 느끼는 순간은 변신(다른 몸이 됨)을 상징합니다. 라투르의 책에서 땅에 도착한 후 어지럼증을 느낀다(18쪽)고 말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라투르와 슐츠의 용어로는 사회계급에서 지구-사회계급으로의 변신하는 순간이겠죠.
[그래서 슐츠의 책은 원제 그대로 "땅멀미"라고 번역했더라면 좋았을 겁니다. 땅멀미는 변신 이후 첫경험이라는 상징성이 있으니까요. ) 최근 애나 칭의 <세계 끝의 버섯>을 읽었는데, 칭은 <모비딕(1850)>에 영감을 받은 것같습니다. ... 곳곳에서..... 저자도 직접 그 소설을 언급하기도 하고.......... 저도 <모비딕>을 읽었기 때문에 각별했습니다. 칭이 '나보다 더 <모비딕>에 감동받았구나' 하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특히 유색인종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서사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화자의 이름 '이스마엘'은 아랍문명의 조상이라는 상징이 있죠. 문명인에게 혐오적인 대상에 불과할 식인종 '퀴퀘그'의 영웅적 면모, 고래의 표정은 얼굴이 아니라 등에 난 혹에서 읽을 수 있다는 주장, 그리고 인간 문명('살인자')에 대한 평가 등이 기억납니다. 칭이 <모비딕>을 말하는 순간 칭이 친구처럼 친근하게 느껴졌고, <모비딕>의 상징이 <세계 끝의 버섯>과 얽히면서 흥미진진해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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