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빅 번>은 1910년 여름에 미국의 로키산맥 북부에서
일어난 큰 산불(일명 'Big Burn')에 대해 다루는 작품입니다.
'빅 번'은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산불로 흔히 언급되며, 불과
36시간만에 우리나라 전라남도만한 면적을 태우고 지나갔
을 만큼 엄청난 속도로 번져나갔습니다. 이 산불은 자연의
무시무시한 위력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왜소한 존재인지를
보여준 사건이기도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미국사에서 산림
정책의 방향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기도 했습
니다. 당시 기퍼드 핀쇼가 주도해 막 설립된 조직이었던 산
림국(나중에 미국 산림청)은 이 사건 이후 산불에 대처하는
기관으로 확고하게 제도적 기틀을 다지게 되었지요.
<빅 번>에서 인상적인 대목은 산불에 대한 대처 방법이 100
여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점입니다. 사
람의 발길이 닿기 어려운 지역에 헬리콥터로 일부 지원이 가
능하다는 점만 빼면, 산불 진화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수작업
도구들을 써서 땅을 파고, 불에 탈 만한 것들을 치우고, 방화
선을 구축하는 것이 주이고, 이는 1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다만 1910년 당시 사람들은 산불을 인간의 힘
으로 '정복'할 수 있다는 막연한 낙관을 좀더 강하게 품고 있
었고, 이는 전례없이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습니다. 강풍에 의
해 기차보다도 빠른 속도로 움직였던 불의 장막 속에 갇혀 소
방 활동을 하던 87명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빚어졌
으니 말입니다. <빅 번>은 이러한 인간의 오만이 가져온 피해
도 함께 조명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볼 <미스터 토네이도>는 일본 출신의 미국 과학자로
토네이도 연구에 평생을 바친 테드 후지타(본명 테츠야 후지
타)의 일대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후지타는 젊었을 때 나가사
키에서 미군의 원자폭탄 폭격을 견디고 살아남았고, 이후 기
상학을 공부하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대학에 자리를 잡
고 토네이도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특히 토네이
도를 강도에 따라 분류하는 '후지타 등급'을 제안했고, 만 하루
동안 148개의 토네이도가 발생한 1974년의 '슈퍼 아웃브레이
크'에 대한 연구로도 유명합니다. 또한 그는 비행기 이착륙시
동체를 불안정하게 하는 순간돌풍(microburst)의 존재를 입증
해 항공 안전에 큰 기여를 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합니
다.
학계에서 토네이도에 미친 '괴짜 과학자'로 종종 폄하되면서도
이를 악착같이 쫓아다녔던 과학자의 집념어린 모습이 흥미로
운데요, 그가 발휘한 통찰이 젊었을 때 일본에서 겪었던 원자
폭탄의 경험과 무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역사의 기묘한 아이
러니를 느끼게 하는 작품입니다.
<빅 번>과 <미스터 토네이도>의 러닝타임은 각각 52분입니
다. 상영 장소를 8시 50분까지 빌려 놓아서 시간 여유가 많지
않으니 당일 늦지 않게 오시기 바랍니다.